묘비

시리아, 팔미라 출토 추정

Not on view

이 고부조 조각상은 연회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한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두 딸의 전신상을 보여줍니다. 이 묘비는 팔미라에 있는 어느 가족묘의 개구부를 막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기 1세기 중엽까지 팔미라(“종려나무가 있는 곳”)는 파르티아 왕조시대의 근동 지역과 로마령의 지중해 항을 이어주던 대상의 길을 따라 형성된 부유하고 인상적인 도시였습니다. 도시의 전성기를 맞은 팔미라 시민은 파르티아 왕조의 이란과 서방의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관습 및 의복 양식을 받아들였는데, 이 혼합 양식은 팔미라의 미술에도 나타납니다.

Funerary relief, Lime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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